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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학사

1945년부터 1950년까지 해방 공간의 소설

by 데일리쥬 2024. 11. 29.

  해방된 조국에 문학인이 해결해야 할 당면한 과제는 식민지 문화의 잔재를 청산하는 일과 민족 문학의 재정립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이 실제로 맞부딪친 것은 이념적인 갈등이었다. 소위 계급문학과 순수문학과의 갈등이다. 이 갈등의 뿌리는 1920년대 중반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겠지만 해방된 조국에서는 문단의 주도권 때문에, 혹은 정치 세력과의 동조 또는 결탁 때문에 작품보다는 작품 외적인 곳에서 더 치열하게 접전하고 있었던 셈이다. 

 

 

  먼저 주도권을 쥔 쪽은 계급문학 쪽이다. 문학의 질보다는 양을, 문학의 예술성보다는 문학의 도구성을 더 중요시하는 계급문학 쪽은 해방 다음 날에 벌써 '문인보국회' 간판을 떼어내고, '조선 문학건설본부'라는 간판을 내걸었다. 임화, 김남천, 이원조, 이태준 등의 주동으로 이루어진 일이다. 이들과 이념을 같이한 문인들은 물론이지만 태도를 확고하게 정하지 못한 문인조차 이들의 깃발 아래 모여들었다. 확실히 그들의 문단적 주도는 효과를 본 셈이다.

 

 

  그러나 이들의 행적을 잘 알고 있는 여타의 문인들은 이들의 섣부른 선취적 행동에 대해 불만을 가졌다. 이들은 그 대응 세력으로 '조선문화협회'를 발족시켰다. 얼마 후에 이 양대 세력 속에 각각 강, 온 세력이 나누어져, 마찰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문단은 이 양대 세력으로 그 이념이 대립하여 해방 공간의 우리 문학을 전개해 왔던 것이다. 특히 계급주의 문학은 그 배후에 정치 세력이 개재해 있음으로 해서 단순한 문학인들만의 문제도 아니었다. 

 

 

  이 양대 문단 세력의 대변인 격이라고 할 수 있는 임화와 김동리를 통하여 양 진영의 논리를 살펴보자면, 임화는 일견 민족 문학의 건설을 위하여 일제의 잔재를 소탕하는 것이 급선무인 것처럼 들린다. 그러나 이 배제의 논리는 결코 일제의 잔재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민족 문학은 결코 우리 민족 전체가 유구한 역사를 통하여 창출한 문학이 아니라는 결론이 나온다. 노동자, 농민 계급, 즉, 프롤레타리아의 이념에 기초해 있지 않으면 근대적 의미의 민족 문학이 될 수 없다는 논리가 도사리고 있다. 인간 다음에 계급이 존재한다는 사실, 문학이 인간을 보지 않고 계급만 보고 있으면 알맹이를 놓친 껍질만의 문학이 될 위험이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김동리는 글에서 순수문학이 곧 민족 문학이 될 수 있음을 천명하고 있다. 왜냐하면 양자 다 휴머니즘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이념의 갈등은 그대로 작품에 표현되고 있다. 그러나 계급문학인 경우는 그 사상적 체계가 분명하지만, 소위 순수문학의 경우는 사상적 체계가 없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하면 전자는 문학 바깥에 있는 사상적 체계에 복종하고 있지만, 후자의 경우는 휴머니즘을 옹호하는 한 작가의 창조 정신에 의거되어 있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순수문학 쪽 역시 당시의 민족적 현실의 일면을 외면하고 있었다는 비난을 면할 수 없다. 그것은 지주와 소작인과의 관계이다.

 

 

  이 시기의 소설들을 우리는 대체로 다음과 같이 나눌 수 있다. 첫째, 해방 전후의 조국 현실을 사실적으로 묘사함으로써 그 실상을 보여주려는 소설, 둘째, 일제 식민지 체험을 회오하고 속죄하는 관점에서 쓴 소설, 셋째, 해방된 조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람들을 비판적 관점에서 쓴 소설, 넷째, 순수문학을 지향하는 소설, 다섯째, 계급의식을 고취함으로써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선동하려는 소설 등이다.

 

 

  먼저 해방 전후의 조국 현실을 사실적으로 그리고 있는 김영수의 '혈맥'을 보기로 하자. 이 소설은 해방 직후 좌우익의 갈등이 첨예할 때 부자가 겪는 갈등을 다룬 작품이다. 이념이 다른 단체에 각각 가담해 있음으로 해서 부자간의 종래 윤리로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갈등 관계에 돌입한다. 의학박사 이필호는 우익 정당의 요직에 있는 인물이다. 이에 반하여, 그 아들 기호는 의전 학생 대표로서 좌익 세력의 선봉이 되어 있다. '신탁통치 절대 반대'와 '삼상회의 절대 지지'라는 당시 우익과 좌익 단체들의 주장이 그대로 이 부자간 갈등의 이유가 되고 있다. 부자는 동조하고 있는 진영이 거리에서 부딪칠 때 각기 그 단체의 일원으로서 충돌한다. 그 충돌은 집안으로까지 들어온다. 정치적 이념이 단란한 가정까지 파괴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주의할 것은 오랫동안 그토록 존중되어 왔던 부자의 윤리가 위기에 봉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념 때문에 부자간이 한순간에 적이 될 수 있다는 것은 한국의 전통적 윤리관을 뿌리째 흔들어놓고 있는 것이다. 몇 배 년을 지탱해 온 유교적 가치관이 해방과 더불어 급격히 무너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소설은 물론 이념의 갈등에도 불구하고 결국에는 혈육의 정은 어쩔 수 없는 것이 아니냐는 저자의 의도를 담은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가치관의 기반이 흔들리고 있는 점을 간과할 수 없는 것이다.

 

 

  이태준의 '해방 전후'는 현이라는 소설가가 해방을 전후하여 겪었던 체험을 담담한 필치로 쓴 소설이다. 일제의 위협으로 문인보국회에는 가입하고 있었으나 실제로는 붓을 꺾고 있었던 주인공이 서울로서는 더 지탱할 수 없어 낙향하고 만다. 그러나 좁은 시골 역시 버티기가 그리 만만치 않았다. 그곳에서는 그는 조선 선비의 꼿꼿함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향교의 윤직원을 만나게 된다. 해방되자 서울로 올라온 그는 곧 좌익 문학 단체에 가담하여 활동한다. 일제 강점기 때는 서울 발걸음도 아니했다는 윤직원이 올라와 현에게 좌익 문학 단체에서 활동하지 말기를 간곡히 충고한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 때의 소극적인 자세를 버리고 적극적으로 살 것을 결심한 현은 윤직원과 결별할 수밖에 없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