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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학사

1930년부터 1945년까지 소설의 흐름 2

by 데일리쥬 2024. 11. 21.

  1930년부터 1945년 소설의 갈래로는 괴로운 현실에서 도피와 외면이 있다. 1930년대 초 한국의 문화 전반에 대한 일본의 탄압은 그 종반과 1940년대로 접어들면서 갈수록 가열되었다. 세상이 이와 같이 암담해지자 특별한 몇몇 경우를 제외한 대부분의 문인은 현실에서 얼굴을 돌리거나 멀리 도피해 버렸다. 소설가 중에는 전원에 머물며 순수란 이름으로 미문을 남기기에 몰두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리하여 에로스적인 것에 관심을 기울이는 작가도 있었고 자기의 신변에서 떠나지 않거나 자신의 의식 분석에 몰두하는 사람도 있었다.

 

 

  도시를 배경으로 삼고 있는 경우도 일본의 한국에 대한 식민지 통치에서 오는 삶의 고통스러움, 사회의 불균형성을 문제 삼는 작품보다는 사소한 일상 주변에 머물면서 흥미로운 이야기를 제공해 주는 데 그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대표적인 작가로는 이효석이 있다. 이효석은 1928년 본격적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이후 그는 프로문학에 보조를 같이하는 작품을 보여 유진오와 더불어 한국 현대문학사에서 가장 성격이 뚜렷한 동반자 작가의 한 사람이 되었다. 그러나 프로문학에 대한 일제의 탄압이 차츰 강화되자 유약한 서생의 면모가 특히 현저했던 그는 작가적 태도를 바꾸어버렸다. 그는 돼지가 교미하는 모습을 보고 이웃 소녀 '분이' 생각하는 십 대 소년 식이의 이야기를 출발로, 원시적인 성의 세계로 빠져들어 갔다.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메밀꽃 필 무렵'에서도 장돌뱅이 허 생원은 젊은 시절 물레방앗간에서 우연히 만난 처녀와 정사를 벌여 그녀로 하여금 아기를 가지게 한다. 허 생원이 그랬듯 피륙 짐을 지고 허 생원과 함께 장을 돌고 있는 그의 당나귀도 장바닥에서 '강릉집 피마'를 보고 발정을 해 날뛴다. 이처럼 그의 소설에서는 원시적 생명력이 넘쳐흘러 어떤 신비감마저 자아낸다. 이효석의 소설은 그 특유의 시적 분위기를 자아내는 문장에 의해 청신한 분위기를 이루고 있다. 세련된 언어 감각에 의해 서술, 묘사된 효석의 작품들은 뛰어난 형식적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어 '조선 언어예술이 도달할 수 있는 한 정점'으로까지 칭찬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의 작품에 나타나는 죄의식 없는 분방한 자웅의 교섭은 동물적 쾌락 이상의 의미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등장인물들이 벌이는 혼음, 난교에서 동물적 쾌락만이 낭자하게 드러나 있을 뿐 그 성의 결합에 창조적, 재생산적 의미가 결여되어 있다는 것은 그의 소설이 현실에 발을 딛고 있지 않다는 것과 함께 이효석 문학에서의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두 번째 작가로는 김유정이 있다. 1935년 작가로 데뷔한 김유정은 2년 남짓한 짧은 작가 생활에 30여 편의 뛰어난 단편을 남겼다. 그는 어리석고 착한 시골 사람들의 삶을 유머러스하게 그리는 특유의 소설 세계를 보여준다. 흔히 그의 대표작으로 지목되는 작품을 독자는 당시의 현실과 관련되어 심각성을 가지고 읽을 수 없다. 왜냐하면 이들 작품에서 식민지가 된 나라 현실의 어두운 그림자나 농민에 대한 제도적 착취 같은 것은 감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간혹 그는 현실을 근시안적 눈으로 보았다거나 호의의 색안경을 끼고 보았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확실히 그의 작품들은 잘못된 현실을 정면에서 해부하고 이를 문제 삼고 있지는 않다. 이런 면에서 그는 당시의 일제 식민지 통치라는 현실에서 한걸음 물러서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의 작품 세계를 현실도피라고까지 매도하는 것은 부당하다. 그의 작품이 불러일으키는 웃음은 즐겁기만 한 웃음도, 속이 빈 사람의 어이없는 웃음도 아니다. 그 웃음 다음에는 짙은 페이소스가 따르게 하는 것이 김유정의 작품이다. 어디에서도 살아갈 출구를 발견할 수 없는 남편이 노름할 돈을 얻어오라고 아내의 머리와 신발을 모양내어 외간 사내에게 보내는 '소낙비', 굶주림에 견디다 못해 아내를 가죽처럼 소 장수에게 파는 사내의 이야기 '가을' 같은 작품은 독자가 읽을 때 웃을 수는 있으나 다음 순간 그 밑바닥에서 전해오는 찌르르한 아픔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김유정의 작품은 다 같이 농촌과 농민의 삶을 소재로 하고 있으면서도 이효석의 작품 세계와는 다른 가치를 발견할 수 있다 할 것이다. 다만 그 궁핍의 원인까지를 말하라고 한다는 것은 당시의 극심한 검열이란 현실을 감안할 때 그에게 무리한 요구라 해야 할 것이다.

 

 

  세 번째 작가로는 유진오가 있다. 유진오는 1932년까지 대표적인 동반자 작가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그는 카프에 대한 2차에 걸친 검거 선풍 이후 작가로서의 모습을 바꾸어버렸다.

 

 

  유진오는 투명한 의식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현실과 타협하지 않을 수 없는, 그러나 비리가 횡행하는 현실에 적응하지도 못하는 인물을 통해 당시 지식인의 고뇌를 그리고 있다. 그는 이후 1930년대 초반의 사회 참여적인 작품에서 더욱 후퇴하여 과거로 도피하고 만다. '창랑정기' 같은 작품은 주인공이 어린 시절에 대한 강한 그리움을 보여주는 회고담 이상의 큰 의미를 지니고 있지 않다. 그 뒤 그는 그 이상의 문학적 진경을 보여주지 못하고 문단에서 은퇴하고 말았다.

 

 

  네 번째 작가로는 이상이 있다. 자신의 의식을 투시, 분석한 끝에 당시로서는 놀랄 만한 현대적 언어 감각으로 말재간을 피우고 있는 것이 이상의 소설 세계이다. 그의 소설에서는 진지한 인간 삶의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고, 살아간다는 일의 고통스러움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는 등장인물도 발견할 수 없다. 1930년대에 철저하게 현실이, 역사가 없는 소설 세계가 있었다면 이상의 작품들이 그 전형이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