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직후 시단의 두 경향에 대해 살펴보겠다. 해방 직후 문단은 계급문학으로서의 민족 문학과 순수문학으로서의 민족 문학이라는 두 경향으로 대립하고 있었다. 시단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여서, 계급문학으로서의 민족시를 주장하는 시인과 순수문학으로서의 민족시를 주장하는 시인이 있었다. 전자의 경우가 김기림과 정지용 등이라면, 후자의 경우가 조지훈과 서정주 등이다.
김기림은 한국에 모더니즘을 소개한 시론가이자 장시를 발표한 시인이다. 그가 1930년대 모더니스트의 기수였을 때에는 순수시를 주장하였으나 해방 이후 갑자기 태도를 바꾸어 계급문학을 옹호하는 주장을 폈다. 우리는 그의 그러한 주장을 1946년 2월 8일 전자문학자대회에서 행한 '우리 시의 방향'이라는 강연에서 들을 수 있다. 그는 이 강연에서 '8·15와 건설의 신기운'을 주장하고 정치를 시에 끌어들였다. 그리고 '전진하는 시정신'을 주장하였다. 그는 "시는 새로운 문학 건설의 한 날개로서 처참한 폐허에서 불사조와 같이 떨치고 일어났을 때 그것은 틀림없이 이 새 나라의 것이었으며 그중에도 새로운 나라의 등불이며 별이고자 하였다"라고 말한다. 이러한 말은 결코 시를 순수 안에 가두려는 것이 아니다. "일직이 우리 시는 될 수 있는 대로 정치를 기피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오늘은 벌써 사정이 달라졌다"라고 그는 말한다. 이처럼 김기림은 과거의 시와는 다른 이론을 제기하고 있다.
그리고 정지용은 순수시와는 거리가 먼 주장을 한다. 정지용의 주장은 순수문학과는 다른 주장이다. 그의 주장에서 친경향적 성격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계급문학에 대항하여 순수문학을 주장한 조지훈은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순수한 시정신을 지키는 이만이 시로서 설 것이요 진실한 민족정신을 지키는 이만이 민족시를 이룰 것이니 시를 정치에 파는 경향시와 민족의 해체를 목표로 하는 양두구육의 민족시인 계급 시의 결탁은 도리어 시 및 민족시의 한 이단이 아닐 수 없다." 조지훈은 이처럼 시에서 정치를 분리하여 순수시와 민족시 방향으로 역설하였다.
다음으로 해방 직후에 나온 시집을 살펴보겠다. 1946년에는 '조선 문학가동맹' 시부에서 '3·1 기념 시집'을 내놓았다. 무엇보다도 문학사적 의의가 큰 것은 박목월, 조지훈, 박두진의 공저로 나온 '청록집'이다. '청록집'에 수록된 세 시인의 시들은 자연의 발견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이 자연은 시사적으로 볼 때 1930년대의 시문학파나 모더니즘 그리고 생명파가 지향하는 여러 갈래를 정리해 주었다는 데 의미가 있다.
월북 또는 납북된 시인들의 시집으로는 김기림의 '바다와 나비', 오장환의 '에세닌 시집', '병든 서울', 정지용의 '지용시선', 권용득의 '요람' 등이 발간되었다. 1947년에는 유치환의 '생명의 서', 김광균의 '기항지', 안서의 '먼동이틀제' 등이 있다.
6·25 전쟁이 발발하여 유치환 등은 부산에서 문총구국대를 조직, 종군하기도 하였으며, 또 이 시기에 전란 속에서 김영랑을 잃었음은 시단의 큰 손실이었다.
경향시와 시조는 주로 8·15 이후 '조선 문학가동맹'을 중심으로 활동하다가 월북한 시인들의 작품을 말한다. 그들의 작품은 사실상 예술성보다는 사상성 또는 정치적 구호로 전락할 가능성이 짙다. 그들의 시에서 구호를 빼면 예술 작품다운 작품은 극히 드물다는 느낌이다.
순수시를 주장한 시인들은 민족주의 계열의 시인들이다. 그들은 정치적 목적이나 이데올로기를 배제한 순수시로 민족시를 수집하려 했다. '조선 문학가동맹'과 대결하기 위하여 '전 조선 문필가협회'나 '조선 청년 문학가협회'를 결성하기도 했지만 문학만은 정치로부터 순수해야 한다고 생각한 시인들이다.
1930년대에 모더니즘 계열의 시를 썼던 김현승은 해방이 되자 다시 시를 쓰기 시작했다. '눈물'은 6·25 직후에 발표된 시다. 그의 시에서 눈물은 생명과도 같은 귀한 것이며 자신의 전부이기도 하다. 눈물은 가장 값진 것이며 따라서 최상 · 최후의 존재라고 한다. 이처럼 순수한 절대 가치를 그는 추구한다. 이 시기에 가장 활발한 활동을 한 시인들은 청록파 세 시인이다. 박두진의 '해', '청산도', '햇볕살 따실 때에' 등은 이 시기에 쓰인 시들이다.
'해'는 태양처럼 밝고 큰 것에 대한 사랑을 노래하고 있다. 조연현은 이 작품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했다. "박두진은 이 시를 통해 한국 서정시가 이룰 수 있는 한 절정을 노래했다."
이 시에서 박두진의 시정신이 거침없이 펼쳐진다. 박진감 있는 내재율의 리듬과 함께 태양처럼 솟아오르는 감격이 있다. 어둡고 춥던 일제 36년간의 억압된 감정이 밝고 뜨거운 용암처럼 철철 흘러넘친다. 그칠 줄 모르는 시정신의 분출은 그의 대표작 '청산도', '햇볕살 따신 때에' 등으로 이어진다. 박목월의 '나그네'는 한국 리리시즘의 정상을 점하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일제강점기 설움에 겹던 한국인의 얼을 노래한 작품이다. 조지훈은 '완화삼', '낙화' 등의 수작들을 발표하였을 뿐 아니라 순수시를 지향하는 평론을 발표하였다.
지금까지 해방 직후의 시와 시조에 대해 살펴보았다. 이 시기의 특징을 지적한다면 해방으로 말미암아 일제 강점기 때 잃었던 모국어를 되찾고 모국어를 시어로 아름답게 가꿀 수 있었던 점이다. 다음으로는 순수시를 근간으로 하는 민족시의 정립이다. 계급문학과 순수문학의 대립은 불행한 역사적 교훈이 되었던바, 역시 우리 문학의 맥은 순수문학으로서의 민족 문학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을 분명하게 하였다. 해방과 함께 맞이한 혼란기이지만 그동안 억압되었던 감정이 일시에 터져 나와 많은 작품과 많은 시집이 나왔던 것도 기억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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