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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학사

1930년부터 1945년까지 소설의 흐름 1

by 데일리쥬 2024. 11. 21.

  1930년대에서 1945년 해방이 되기 전까지의 한국 문단은 여러 가지 색채와 음성이 뒤섞인, 주조를 잡을 수 없는 성격의 것이었다. 1920년대 초에는 낭만과 퇴폐적인 경향이 풍미했고 그 중반 이후에는 프로문학과 국민문학이 첨예하게 맞섰던 사실과 견주어보면, 문단들 주도하는 어떠한 흐름도 없었다는 것이 이 시기의 특성이라면 특성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1933년에 결성된 구인회가 있었으나 이는 하나로 모인 강한 주장을 내세우는 그전 문인들의 모임과는 성격이 달라 색채와 경향이 뚜렷하지 않은 일종의 친목 단체 비슷한 것이었다. 1930년대 초반 잠깐 유진오, 이효석으로 대표되는 동반자작가들이 상당히 경향성이 짙은 작품들을 발표했으나 1931년 카프 맹원에 대한 제1차 검거 선풍이 분 뒤부터 그러한 작품도 볼 수 없게 되었다. 일본이 1931년 만주사변, 1937년 지나사변을 도발하면서부터 문화 전반에 걸친 탄압을 강화하자 작가들은 이러한 현실에 제 나름으로 대응해 나갔다. 따라서 이 시대에는 다양한 색채의 소설들이 발표되었다. 한민족이 일본이란 이민족의 기반에 매여 고통 속에 살아간 현실을 어떻게 인식하고 작품 속에 어떻게 수용했는가에 주목하여 작가적 태도, 작품 경향에서 몇 갈래의 흐름을 정리할 수 있었다.

 


  먼저 제한된 현실에서 비판적 리얼리즘의 실현이다. 이 시기의 작가들은 조선총독부의 무자비한 검열, 그로 인한 삭제, 복자, 게재 금지에 시달렸다. 그러나 그러한 극단적인 상황에도 불구하고 문학은 인간의 현세적 삶을 외면하고는 존재할 수 없다는 완고함을 보여 최소한의 허용된 여건 아래에서 현실 참여적인 작품을 발표한 작가들이 있었다.

 

 

  물론 이 시기의 문학이 전대의 그것에 비해 민족주의적이고 자유주의적인 경향이 약화, 후퇴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이 기간의 문학 전체를 뭉뚱그려 현실 도피적인 역사 부재의 문학이라고 비난할 수는 없다. 

 

 

  대표적인 작가로는 이태준이 있다. 이태준은 1930년대 한국 순수문학의 대표로 불릴 만큼 많은 수작을 발표한 작가이다. 그가 1946년 월북함으로써 해금이 될 때까지 그에 대한 연구나 언급이 금기로 되어 있었다.
  그는 구인회의 일원으로 카프로 대표되는 비문학적 정치주의에 반대, 예술성을 중시하여 순수문학의 기수가 되었다. 그의 소설을 가리켜 역사 부재, 사회 부재의 문학, 또는 상고적, 감상적, 패배주의적 문학이라고 하는 주장이 현재까지 학계의 중론처럼 되어 있지만 이제 이러한 피상적이고 사실과 유리된 논의는 재검토되고 수정되어야 할 것 같다. 그의 작품에는 물론 과거에 사는 낙백한 인간의 이야기가 있다. 그리고 귀기마저 감도는 유미주의적인 색채를 띠고 있어 현실을 떠나 있는 느낌을 준다.
  

 

  그러나 이러한 면은 이태준 소설의 본령이 아니다. 그는 다양한 소재와 제재에서 결코 어떤 획일적인 틀에 맞추어 단언할 수 없는 다양한 주제의 작품을 창작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의 작품집을 대하면 찬연한 예술품 전시를 보는 것 같은 감이 들게 된다.

 

 

  그는 일제 치하 한국인의 고통스러운 삶을 작품화하고 있다. 여러 작품 속에서 일본의 한국에 대한 식민지 통치의 실상을 폭로하고 있다. 다른 작가들의 이 시대 작품에도 물론 삶의 고달픔이 있다. 그러나 그러한 작품의 경우 그 가난과 고통은 괴질을 앓고 있는 것처럼 그것이 어디서 오는 것인지 원인이 밝혀져 있지 않은 데 반해 이태준은 그에 대한 언급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를 결코 가벼이 평가해서는 안 될 일일 것이다.

 

 

  그의 또 다른 소설에서는 강한 삶에의 의지 및 생존을 위한 처절한 투쟁의 현장을 보여주고 있어 그를 단순히 패배주의, 회의주의 작가라고 폄훼하는 것은 옳은 평가가 될 수 없다 할 것이다. 

 

 

  또 한 가지 중요한 점은 그의 소설들이 아름다운 문장과 치밀하면서도 자연스러운 구성으로 미적 승화를 이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태준의 소설은 이러한 면에서 항일적인 발언을 하고 있으면서도 그러한 문학이 흔히 빠지기 쉬운 단선적 모습과 경직성을 극복하고 있다. 이러한 면에서 이태준은 1930년대 한국 문단의 정상의 자리를 차지한 작가이며 그의 작품은 한국 단편문학을 1920년대의 수준에서 한 단계 더 끌어올려놓는 공적을 이룩했다 할 수 있다.

 

 

  그다음 작가로는 채만식이 있다. 채만식은 식민지 현실에 대한 우회 공격을 하였으며 30년대 풍자소설의 일인자라 할 수 있다.

 

 

  1930년대 이후 한반도의 식민지 현실에 대해 정확한 역사의식을 가지고 그 반역사성을 인식하고 작품을 통해 이를 우회 공격하고 있는 작가이다. 1920년대 들어 일본에 착취당하는 궁핍한 농민들의 고달픈 삶을 그리거나 민족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으로 감각하기 시작하였지만, 1930년대 초의 이러한 작품들은 그 의욕에 비해 사실성이나 서정성을 획득하지 못해 습작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가 본격적으로 작가로서의 역량을 발휘하기 시작한 것은 1936년 이후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일제의 문인들에 대한 탄압이 심해지자 잠정적으로 붓을 꺾고 있던 그는 1936년 중반 이후 문단에 다시 나와 일련의 풍자소설을 발표했다. 이미 전 작품을 통해 풍자소설을 쓸 수 있는 작가적 역량을 보인 그는 1937년부터 그의 대표작이라 할 만한 수작들을 발표했다. 작품을 통해 엄청난 노력과 돈을 들여 고등교육을 받고도 일자리를 얻지 못해 무의무능한 인간이 되고 마는 당시 한국 지식인의 고뇌를 반어적으로 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