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0년대의 시대적 분위기는 암울할 수밖에 없다. 문화 발전이란 다원적인 상호관계 속에서 가능한 것이다. 정치, 경제, 교육, 과학과 기술, 문화 등은 모두가 나름의 개별적 측면이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상호보완적이지 분리될 수 없다. 일제는 합방 후 통치 수단으로 모든 분야의 종속 상태를 요구하면서 문화적 종속 상태 역시 강요하였다. 이를 각성하고 이에 대응한 민족 세력이 약화하는 상황 속에서 소설은 무엇을 말하였는가, 소설은 어떻게 성장하였는가를 검토해야 할 것이다.
이 시대 신교육을 받은 지식인들은 대부분 일본 유학 중이거나 유학을 경험한 사람들이고, 이들은 대체로 부유층 자제들이다. 국권을 박탈한 나라에 가서 새로운 서구 문명의 세례를 받은 이들은 점차로 자아 각성을 인식하고 이에 따른 개성의 신장, 개인의 행복, 자유 평등사상을 나름대로 자각하기 위해 시작하였다. 이들은 이러한 근대정신의 시각으로 근대화의 장애 요소를 부정하였고, 그것은 우리 조상들의 가치관에 대한 도전으로 변하였다. 유교적 이데올로기를 서구 이데올로기와의 경쟁에서 패배한 것으로 보고 이들은 과거 조선 시대 사회 제도의 모순과 부당한 인권 유린에 대한 항거를 호소하고 싶어 했다. 특히 삼종지도의 여권 유린과 조혼 제도로 인한 개인 행복의 박탈을 직접적으로 경험한 유학생들은 그것을 논문이나 소설로 일깨우고 싶은 충동이 컸다.
일찍이 일본에 유학한 고독한 반역자들은 신문명 개화를 통해 주지주의적 조선의 과거를 거부하였으나 아직 아무런 미래의 신기루를 볼 수도 없었다. 반역적인 소외자의 고독한 목소리가 결국 단형 서사시를 만들어 단편소설의 양식이 형성되었다.
단편소설의 사전적 정의를 참고한다면 "단편소설은 그 성질상 사회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고 낭만적이고 비타협적인 성격을 지닌 장르에 속하는 것이다." 단편소설은 흔히 사회로부터 소외당하고 규범에서 일탈한 떠돌이, 몽상가, 추방된 자 또는 희생된 자의 꿈과 한두 사람에게 얽힌 갈등을 그 특징으로 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살피면 유학생들의 심리적 단편을 밝히는 문학 장르로 단편소설이야말로 가장 적합한 양식이다. 또한 이들은 유학생으로서의 경험 미숙, 깊이 천착할 수 없는 자기 고유의 정서나 역사의식 부족 그리고 예측할 수 없는 미래에 대한 전망 등으로 인해 단편소설을 쓰게 되었다. 물론 상식적으로 1910년대 문예 작품 게재지가 제한적이었다는 점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단재 신채호와 소성 현상윤은 전자가 전통적 한학자이고 후자가 일본 유학생이지만 역사학자라는 공통점이 있다. 이들은 현실적인 민족의 모순을 직시하면서 그것에 항거하는 투쟁을 우회적 수법으로 소설화하였다.
신채호는 주체적 민족 세력에 의한 문학 활동의 궤멸과 신 소설류의 애정물이 민족정신을 흐리게 하는 현실을 통렬히 질타했다. 소설의 민중에 대한 막중한 감화력에 따른 책임을 외면한 신소설로 음담, 괴화 따위는 결국 효용가치가 없을 뿐만 아니라 진실을 혼미하는 무익한 것임을 신채호는 강조한다.
현상윤은 춘원과 같은 평북 정주 출신으로 평양 대성학교를 거쳐 서울 보성중학을 1912년에 졸업하고 와세다 대학 사학과와 사회학과를 2등으로 졸업하였다. 그는 재학 중 시, 소설, 수필, 논설 등 각 영역의 문학을 습작하였으나 귀국 후에는 교육계, 학계에 종사하여 조선유학사를 쓰기도 하다가 육이오 전쟁 중에 납북되었다.
1910년 국권침탈로 국권이 상실되고 한국민의 우민화 또는 문화 종속 정책이 강요됨으로 말미암아 언론, 출판, 집회, 결사의 자유가 박탈되고 유일하게 남은 일간지는 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뿐이었다. 이에 대응하기 위하여 등장한 문학작품 발표지로 국내에서는 청춘, 태서문예신보 등과 일본 유학생들이 발간한 학자 광이 있었고 이어서 창조가 나왔다. 이러한 여건하에서 가장 두드러진 작가는 춘원 이광수였다. 그는 시, 소설, 평론, 수필, 기행문 등 문학 양식 전 분야에 걸쳐 집필하였으며 일종의 문화비평이라고 할 수 있는 계몽적인 논설로도 설득력 있고 감동적인 문장으로 많은 독자에게 영향력을 발휘하였다.
이광수만큼 이 땅의 소설가 중에서 사랑을 많이 받고, 동시에 미움을 많이 받은 작가도 찾기 어렵다. 신을 지향하려다 좌절한 작가, 건드릴수록 영광과 상처가 번갈아 튀어나오는 작가, 그가 바로 이광수이다. 이광수는 문장을 구도자의 자세로 집필하였으며 문장을 통하여 개인과 민족 그리고 인류를 구원하려는 종교적 자세를 견지하였기에 그의 소설은 대부분 시대마다 문제가 되는 갈등을 이상적인 정신세계로 해소하려 하였다. 그것은 결국 춘원의 장점이 될 수도, 단점이 될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춘원 문학에 대한 긍정적 평가로는 위대한 정신력의 소산에서 산출된 것으로 볼 수 있으나 부정적인 측면으로는 춘원이 현실 인식과 역사 인식의 부족으로 사태를 무산시킨 작가라는 견해가 있다.
작품에서 구현되고 있는 종교적 구원관 혹은 인간 해방에 대한 도덕적 계몽의식이 현실 의식을 고양하였는가 혹은 저해하였는가는 이광수의 작품을 자세하게 검토함으로써 결정하여야 할 것이다. 무정이 최초의 근대 작품이라는 평가는 오늘까지도 지배적이다. 1910년대까지 지속해서 자기 갱신을 해오던 신소설과 단편소설의 기교 축적이 무정에 이르러서 집약되어 실현된 셈이다. 무정이 한국 근대소설에서 최초의 기념비적 작품이라고 평가되는 이유는 전대 소설과의 차별성과 문학성에서 연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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