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근대적 소실의 효시로 칭해지는 소설은 이인직의 '혈의 누'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신소설로서 알려진 '혈의 누'가 발표된 것이 1906년이다. 1906년을 전후하여 잡지와 신문에 게시된 소설의 종류로는 신소설이라고 칭해지는 소설 외에도 토론체 소설, 한문 소설, 역사, 전기류 소설, 그리고 몽유록계 소설 등 다양하게 존재하고 있다. 이들의 관계는 서로 경쟁하거나 혹은 서로 부족한 부분을 보충하는 관계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한국 소설사의 맥락에서 이 시기의 소설의 위상과 문학적 의의를 밝히기 위해서는 다양한 소설 양식의 출현 이유와 이들의 문학적 특성과 문학사적 평가가 이루어져야 할 것 같다.
우선 역사, 전기류의 번역과 번안에 대해 살펴보겠다. 중국이나 일본의 경우와도 마찬가지이지만, 한국의 경우에도 문예 작품보다는 먼저 전기나 역사서 같은 것이 번역 또는 번안되어 왔다. 역사, 전기물들의 번역은 당시의 지적 열망에 부응한 것이기도 했으며, 아울러 번역자들의 시대 인식을 반영한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다시 한번 말하자면 이 시기의 젊은 사람들의 새로운 지식의 계발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던 이들 전사, 독립사, 국난 극복 영웅의 전기 중심의 번역은 위기를 맞은 당대의 시국과 이에 대응하려는 영웅주의 사상의 한 반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역사, 전기류와 정치소설류의 번역과 번안은 엄밀히 따져봤을 때 다른 사상적 배경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전자의 경우에는 당대 현실에 대한 역사 인식이 위기의식에 놓여 있으며, 이는 나아가 자주라는 국권 수호 의식과도 관련된 것이다. 반면 후자의 경우에는 민권 투쟁과 관련되는 진보적 사상이 배경에 놓여 있는 것 같다. 이는 역자들의 사상이나 성분을 검토할 때도 어느 정도 드러나는데, 번안, 번역에서의 이러한 현상은 창작 전기소설에서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 같다.
구소설 형태 소설의 존재 양상과 의의에 대해 살펴보겠다. 앞서 살펴봤듯이 신소설이 처음 발표된 것은 1906년인데, 한문 소설이 이를 전후하여 속속 잡지와 신문의 지면을 차지했다. 한문 소설을 검토해 봤을 때 단 한 편만이 구소설과 신소설 요소를 동시에 내포하고 있는 중간 형태의 표본적인 작품으로 평가할 수 있을 뿐, 다른 작품은 비록 제한적인 취재의 현실성이 드러난다고 하더라도 작품에 반영된 작가의 현실 인식이나 정신 그리고 작품의 사회적 기능을 점검해 볼 때 전통적인 한문 소설의 전기성에 바탕을 둔 파한 적 오락성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몽유록 형태의 소설들이 이 시기에 쓰여서 소설의 시대와 사회에 대한 사명을 다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몽유록은 조선조 때부터 있는 소설의 한 유형으로, 양식적 특징은 꿈에 들어가는 것과 꿈에서 나오는 것의 구조로 되어 있으며, 내용은 주로 현실에 불만을 가진 주인공이 비판적으로 작중인물과 대담, 토론을 하는 소설이다. 몽유록 형태의 대표작으로는 안국선의 '금수회의록'과 유연표의 작품이 있다. 이 작품들은 현실비판과 국민 계몽에 중점을 둔 듯하며, 자주정신을 근간으로 한 진보의 개념에 입각한 듯하다. 그러나 이 두 작품은 1905년 5월, 11월에 각각 금서로 압수되었으며, 이러한 종류의 소설은 국외로 망명한 박은식, 신채호 등에 의하여 잠시 명맥을 유지한다.
토론체 소설은 소설의 서사 구조가 토론 형식으로 된 소설을 말한다. 토론의 주제는 다음과 같다. 여권 신장, 여성 교육의 중요성, 자녀 중심의 교육, 근대적 학문의 필요, 적서차별 폐지, 종교와 교육 제도의 비판, 지방색 타파, 반상 문제, 고대소설 비판, 한자 사용 비판, 자주독립의 염원이다. 이러한 주제를 살펴볼 때, 이들 토론의 주제는 당시 사회를 개혁하고 진보를 이념으로 하던 급진적 개화론자들의 개화 이념의 구체적 항목이며, 이는 앞서 소개한 '금수회의록'과 유사한, 당시 풍미하던 연설회의 회의록 같은 감을 금할 수 없다. 그러나 총체적으로 봤을 때 소설 미학적 형상하는 능력과 감동의 문제를 제외하고 본다면, 개명된 독립 국가의 어엿한 국민으로서 자유를 찾고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새날을 희구하는 염원으로 일관된 민권 신장과 국권 회복의 의식으로 제작된 작품으로 평가할 수 있으며, 시사성과 공론성이 강한 작품으로 평가할 수 있다.
신소설이라는 용어는 이인직의 '혈의 누'가 발표된 이후 구소설과 대치어로써 사용되어 온 용어로 한국 문학사에서만 사용되는 독특한 명칭이다. 신소설은 고대소설과 이광수 이후 소설의 중간 단계의 장르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따라서 과도기의 소설로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신소설은 '구시대적인 양식에 새로운 정신을 담은 문학'으로 임화는 규정하고 있는데, 실제로 신소설이 제작된 시기부터 1926년까지의 신소설 모두에 이 규정이 적용될 수는 없는 듯하다. 개화기의 신소설은 비록 합방 이후 1910년대에 가서는 추악하게 퇴행하기는 하지만, 근대화를 지향하는 계몽 의지를 소설적 형상화를 통하여 어느 정도 성취함으로써, 소설의 시대적 사명의 일익을 담당했던 것으로 판단된다.
이러한 개화기 소설의 문학사적 의의는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역사적 현실에 대응하고 극복하려는 노력이 있었으며, 그 문학적 실천으로서 다양한 양식의 문학작품이 생산될 수밖에 없으며, 다양한 문학 양식의 존재 양상은 시대 이념의 존재 양상의 또 다른 현현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한국의 개화기는 단순한 이념에 의하여 근대화로 향하여 나갈 수 없는 역사적 특수 상황을 내포한 시기이며, 이 시기의 문학을 논함에 있어서 어느 하나의 이념으로 대표될 수 있는 문학 현상에 경도되는 문학사의 기술이나 문학사적 평가는 온당한 것이 못 된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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