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 과학 문명이 우리나라에 들어오면서 신구 세력의 갈등 상황에서 개화기 시가는 형성되었다. 1920년을 전후해서 출발하는 한국 근대 시 이전까지의 시가들은 처음에는 개화사상이나 애국정신을 고취했거나, 아니면 일본 제국에 편승하여 우리나라를 팔아버리는 친일 집단에 대한 강렬한 저항정신을 노래한 것이 그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개화기 시가에 대하여 지금까지 얘기되어 온 것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되는데, 그것은 형식과 내용 중 어느 하나를 강조한 관점의 차이라 할 수 있다. 먼저 개화기 시가의 음수율이나 연을 나누는 법에 의한 것으로는, 창가에서 신체시(신시)로 간 것과, 개화 시기에서 창가, 그리고 신체시로 간 것, 마지막으로 개화기에서 개화 가사, 창가, 그리고 신체시로 간 것으로 총 세 가지로 구분되는데, 그중 가장 일반적인 견해는 두 번째의 개화 가사에서 창가, 그리고 신체시로 발전해 왔다는 견해이다. 이러한 분류법은 시적 형태에 의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에 반하여 개화기 시가의 내용과 주제 면에서 특징화할 것을 주장한 정 교수는 개화기 시가의 특색을 요약하여 주장하고 있다. 이것은 개화기 시가의 형식에만 치우쳐져 그간의 논의에 대한 반론으로, 이 시대의 시가는 시대정신의 맥락이나 개화사상 속에서 연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외에도 개화기 시가의 계기적 전개에 대한 이의가 없는 것은 아니나, 현재 개화기 시가의 엄밀한 분석에 앞서 전통 시가와는 다른 차원의 '애국가', '개화 가사', '창가', '신체시'라는 새로운 장르를 각기의 논리 근거를 바탕으로 하여 주장하고 있는 것이 그 대체적인 경향이라 할 수 있다.
이제 대표적인 유형들을 살펴볼 것이다. 우선 애국가 유형이 있다. 4, 4조 2행 연의 대구 형식으로 된 시가 유형의 발생 기원에 대해서는 아직 확실하지가 않다. 그러나 '독립신문'에 실린 애국가 유형의 사가가 나타나기 훨씬 이전의 천주교 가사 같은 것만 보아도 상당 기간을 소급해 볼 수가 있을 것 같다. 포교의 효율적인 방법으로서 그 시대 가장 잘 알려진 시가 형식을 빌려 그것이 번역되었다고 할 때, 전대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기존 형식이라는 전제를 저버릴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애국가 유형에 대한 이제까지의 논의는 신체시의 전 단계로 '창가'나 '개화 가사' 중 어느 하나에다 일괄적으로 이름을 붙여 사용하고 있는가 하면 '개화 시' 또는 '개화가'라는 새로운 장르를 설정하고 있다 함은 이미 앞에서 말했다. 애국가 유형 작품은 양적으로 '독립신문', '대한매일신보', '경향신문' 등에 가장 많이 발표되었고, 그 밖의 신문이나 잡지에는 몇 편씩 실려 있다. 이러한 애국가 유형의 주제 의식은 대부분의 작품이 자연이나 개인적인 삶에서 우러난 예술적 정서의 형상화와는 거리가 먼 애국 사상이나 개화 의욕을 나타내고 있다. 자주독립과 개화사상이 주제 의식으로 나타났지만 사용된 몇 가지의 용어와 구절의 반복으로 각기 특색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민중적인 발상법으로 이루어진 것이 애국가 유형의 공통점이라 할 수 있다.
그다음으로는 개화 가사 유형이 있다. 개화 가사 유형의 시가들은 '대한매일신보'에 실린 약 650편과 기타 개인 문집 등에 전해지는 많은 작품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시가 유형에 대해서는 지금까지도 많은 논쟁거리로서 거듭 얘기되어 왔다. 장르의 명칭이 '한 말 우국 경시가', '개화 가사', '사회 등 가사' 등으로 불리고 있지만, 아직도 정확한 개념 규정이 확립되지 않아 '개화 가사'로 통칭하여 불리고 있다. 시평과 풍자성을 띤 4, 4조의 가사 유형으로 일제의 침략 정책과 그 추종 세력에 대한 강렬한 저항정신을 기조로 한 작품들도 많이 존재한다. 그리고 낡은 전통과 인습을 타파하고 서구 문명과 과학 정신의 도입을 적극적으로 주장하고 있는 작품들도 상당히 많이 존재한다.
개화 가사의 유형으로는 그 내용과 관련하여 형식 면에서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되어 진다. 하나는 작품 전체가 특정한 하나의 주제로 통일되어 있는 데 반하여, 다른 하나는 분절된 각 연이 전혀 다른 주제로 되어 있는 것도 있다. 개화 가사 유형은 고정란인 '사회 등'이 갖고 있는 특색을 그대로 나타내고 있는데, 그 시대의 사회 현실이나 정치를 가사 형식으로 고발하고 있는 형태이다. 4, 4조의 음수율을 제외한 그 내용이 지니는 시사성은 현대 신문의 서평란과도 같다. 한마디로 정의하면 개화 가사는 논평의 율문 화로 그 시작의 동기를 요약할 수 있는바, 주제 의식은 애국가 유형과 같이 크게 개화사상과 민족 이념으로 볼 수 있다. 그 시대의 상황적 추이에 따란 저항정신의 심화한 갈등 구조를 형성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시조형의 단가 유형이 있다. 이는 내용보다 형식으로 구분한 것이다. 시조 유형의 단가들도 4, 4조의 2행 편의 시가 유형이나 4, 4조의 가사 유형과 마찬가지로 전문적인 시인에 의해 쓰인 것이 아니다. 게다가 주제 의식이나 내용에서도 고시조가 지니는 서정성보다는 오히려 시대 상황의 변화에 따른 구국 충절과 애국 사상을 기조로 한 저항정신으로 표상되어 있다. '사조 시조형 단가들은 대부분이 일제의 침략 야욕으로 기울어져 가는 나라에 대한 근심, 자강력 확충과 국권 수호를 위한 애국충정, 일제와 그에 동조하는 친일 인사들을 향한 비판이나, 또 다른 한편으로 권한과 인습 타파, 서구의 신문명 찬양 등을 주제로 하고 있다. 애국가 유형이나 개화 가사 유형과 마찬가지로 그 시대 상황의 변화에 따른 정치와 사회 현실을 주제로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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