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대 소설 앞에는 6·25가, 1960년대 소설 앞에는 4.19와 5·16이 있었다. 1950년대 소설은 6·25로 상처받고 뿌리 뽑히고 다시 일어나려 한 한국인들의 실상과 정신적 기제를 담은 것이라 할 수 있고, 1960년대 소설은 4·19와 5·16이 영향권이 된 한국인 삶의 모습과 의식의 저변을 파헤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1970년대를 살았던 이들, 그중에서도 의식이 깨어 있는 자들을 더욱 고통과 긴장 속으로 몰아갔던 배경사(背景史)로는 특히 어떤 것을 주목해야 하는가. 이에 대한 답을 구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1972년 10월에 있었던 유신 선포가 상징적으로 일러주는 암흑과 공포의 정치, 바로 이것이 1970년대 한국인 삶의 기조, 의식의 방향, 정신사적 추이 등을 근본적으로 조절한 것임은 두말할 것도 없다.
어둠과 얼음의 이미지로 착색된 당시의 정치적 상황이 가장 근본적인 것임엔 틀림없지만, 그러나 1970년대의 한국인들 대부분은 갈등과 절망감. 패배 의식과 소외감 등으로 얼룩져버린 정치적 무의식을 곱씹는 수준에서 머문 것은 아니었다. 당시의 한국인들은 어둠의 정치 이외에 또 하나의 거대하고도 분명한 현실을 만나고 있었다. 흔히들 사회과학자들이 정치의 부산물이라고 지적하곤 하는 고속 경제 성장, 근대화와 산업화의 열기, 대중문화의 급속한 팽창 등의 발전 논리가 예상보다 훨씬 급격하게 열려오게 된 것이다. 뒷걸음치는 정치와 앞으로 뛰어가고 있는 경제, 이는 1970년대 우리 사회가 만나야 했고 감당해야 했고 또 극복 의지를 가져야 했던 엄연한 두 겹의 현실이었다.
정신사는 흔히 문학사의 상위개념으로 아니면 그림자로 설명되는 것으로, 1970년대의 정신사는 바로 이렇듯 어둠의 인식과 밝음의 감정이 분명히 갈라지면서 또 기묘하게도 잘 병존하고 있는 모순된 구조 위에 서 있었던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말은 1970년대의 우리 소설사가 기본적으로 '혼돈의 패턴'을 내부 구조로 삼으면서 '단선적 패턴'을 바깥 틀로 잡고 있다는 논리와 흡사하다. 또 중간소설이 문자 그대로 어중간한 현실 인식을 달리는 것이라면, 1970년대에 들어서서 눈에 띄게 많이 나타났던 중간소설 작가들과 작품들은 바로 1970년대의 정신사와 소설사가 어둡기 짝이 없는 내면과 밝은 듯한 외면이라는 양극을 동시에 그것도 위태롭게 디디고서 있음을 잘 반증해 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미 일제 식민 통치하에서의 작가들과 작품들에 잘 드러났던 것처럼. 닫혀 있는 정치문화 혹은 정치적 상황 앞에서는 사실주의자들이 가장 괴로워하고 위축될 수밖에 없다. 비록 1970년대는 몇몇 문학 사가들이 '소설의 시대'라고 이름한 것에 걸맞게끔 세태소설, 역사소설, 이념소설, 전쟁소설, 종교소설, 중간소설 등등 다양한 유형의 소설이 굵은 선을 남겼을지는 모르나 본격적인 수준의 사실주의 소설이 뒤로 물러나 앉은 시기였음은 여전히 부정할 수 없다.
경제 입국론, 산업화 근대화의 논리, 대중문화론 등 과속한 비약과 급팽창의 방법론을 오히려 예찬한 넓은 의미의 사회발전론도 당시의 작가들에게는 시련이요, 짐이 된 측면이 강했다. 풍요. 능률, 합리성, 세계주의 등의 이름 아래 전통적인 삶의 방식과 사고방식, 민족 고유의 습속과 세계관이 거침없이 또 급격하게 깨지게 시작했다. 보수주의, 점진주의, 이상주의 등등의 말이 있는 것처럼 1970년대의 우리 작가들은 이러한 '누벨 바그' 앞에서 나름대로 고민 어린 선택을 하여야만 했다. 수동적으로 변화의 물결을 타고 나간 작가가 있는가 하면 변화가 접어들어야 할 길과 도달점을 일러주는 데 힘쓴 작가도 있다. 그리고 변화가 남기고 간 병리 현상과 쓰레기에 시선을 모은 작가도 있다. 정확한 표현이 아닐지는 몰라도, 첫 번째 경우에서는 흥미 제공을 장기로 삼으면서 대중성에 제일 큰 비중을 두는 작가들의 얼굴을, 두 번째 경우에서는 엄숙한 표정으로 가득 찬 문학 기능 확대론자의 얼굴을 곧잘 찾을 수가 있었다. 그리고 세 번째 경우에서는 어떤 결과를 남겼든 사실주의의 정신과 방법을 표방한 작가들을 만날 수 있었다. 1970년대 소설의 실체를 올바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비록 저널리즘의 용어이긴 하지만 '1970년대 작가'라는 말에 엉겨 붙어 있는 독특한 뉘앙스와 속을 파헤쳐볼 필요가 있다. 이 말은 '대체로 1970년대에 데뷔하여 왕성한 활동을 보인 작가들'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 것으로 이해되었고 사용되었다. 긍정적 반응보다는 부정적 반응을 더 많이 머금고 있는 듯한 이 말은 '신기록을 낳은 작가들'이라는 뉘앙스를 풍기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어떤 면에서 신기록이며 새로움인가, 전례 없이 높은 판매고를 보인 것. 그 당시로서는 아주 새롭다고 할 수 있는 세계관 혹은 감수성을 터트린 것, 작가의 기본 입상을 사상가보다는 장인 쪽으로 밀어붙인 것 등으로 답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중에서 두 번째와 세 번째 유형의 새로움은 직접적으로, 첫 번째 것은 간접적으로 전통적인 소설관과 작가론에 도전하고 충격을 준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위의 새로움의 내용 중에서 첫 번째 것과 두 번째 것은 표면적으로 볼 때 부정적 측면보다는 긍정적 측면이 강한 것이라 할 수 있으며, 최소한 '가치중립적'인 현상쯤으로 이해할 수 있다. 문제는 첫 번째와 두 번째 형태의 새로움을 획득하기 위해서 세 번째 유형의 새로움을 거침없이 꾀하는 데 있다. 유례가 드문 판매고의 성취를 세 번째 형태의 새로움에다 근거를 두고 꾀한 나머지 결국 '중간소설'의 범주로 떨어지고 만 경우가 되었다. 소설을 본격/통속으로 대범하게 나누어왔던 전통적인 이분론 자의 눈으로 보면 새로운 제3의 갈래인 중간소설들은 수준이 그리 낮다고만 볼 수는 없는 독자들을 포함해서 많은 독자를 소설 쪽으로 끌어들였다는 긍정적인 의미도 있다. 또 이들 중간소설의 작가들이 만들어놓은 두꺼운 독자층은 나중에 가서는 교환가치와 사용 가치가 함께 높은 소설들, 즉 상품성과 예술성이 동시에 뛰어난 작품들을 만들어내는, 한국 소설사에서는 전례가 없다시피 한 바람직한 결과도 가져올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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